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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맑음레터 120호] [응답하라1919] 하얼빈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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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맑음센터 작성일19-09-17 02:21 조회7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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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연길까지 워낙 이동도 많았고 배를 탔던 여독조차 풀리지 않아 다들 지쳐있었다. 그래도 용정에 다녀오던 오늘은 하늘이 얼마나 예뻤는지 모른다. 중국은 기차를 타는 데에도 변수가 많기 때문에 일찍 기차역에 가 있어야 했다. 기차역에 들어가기 아까울 정도로 연길의 하늘은 가을처럼 청명한 날이었다. 기차역에 들어가 짐검사를 마치고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얼빈에서 우리를 안내할 가이드 선생님이 연길역에서 우리를 픽업하러 기차를 타고 오고 계신다고 했다. 기차를 태우러 하얼빈에서 연길까지 오다니 어딘가 비효율적인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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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기 전 마지막으로 화장실을 들르고 매점에서 시원한 아이스크림이라도 먹을까 해서 구경하고 있는데 우리 참가자 한 명이 가방을 잃어버렸다며 사색이 되어 말했다. 설명조차 제대로 못할 정도로 당황하고 있어서 일단은 안심을 시키고 설명을 들었다. 가방을 화장실 안에 걸어뒀는데 나오자마자 잃어버린 사실을 알게 되었고 되돌아가 봤더니 가방이 없어졌다는 이야기였다. 다시 그 칸으로 가봤지만 가방은 없었다. 화장실 밖으로 나가 무엇을 찾는 기척을 하니 어떤 아주머니 오셔서 가방을 맡겨두었다고 말씀하셨다. 중국어라 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역에 있는 작은 파출소 같은 곳에 맡겨두신 것이다. 제복을 입은 사람이 우리가 가방을 찾으러 온 것을 알고서도 강경한 태도로 돌려주지 않았다. 영문을 몰라 당황하고 있었는데 가이드 선생님이 오셔서 상황을 정리해주셨다. 알고 보니 제복을 입은 남자는 가방 속 물건이 뭐였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소지품을 확인하고 가방을 찾았다. 우리 모두 액땜 같은 일이라며 놀란 당사자를 위로했다. 마침 같은 시각에 상해 쪽으로 태풍이 올라와 비행편이 하나둘씩 결항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말씀을 해주시던 부장님은 웃으며 말씀하셨지만 엄청 긴장하신 눈치였다. 과연 가방을 잃어버린 건 액땜인걸까. 그나저나 가이드 선생님이 하얼빈에서 연길까지 오신 건 아마도 이 가방을 되찾기 위해서였나보다. 한방에 상황을 정리해주시다니, 멋져.^^

고속열차를 타고 하얼빈으로 향했다. 기차를 타기 전 가이드 선생님이 하얼빈까지 가는 길에 만주 땅이 얼마나 넓은지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과연 그랬다. 만주벌판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실감할 수 있었다. 만주는 중국 전체에서 쌀 생산량이 가장 많은 곳이라고 한다. 원래 황무지였는데 우리 조상들이 이주해 자리를 잡으면서 그야말로 한 평씩 한 평씩 개간해서 이제는 중국 전역에서 가장 손꼽히는 곡창지대가 된 것이다. 새벽같이 움직여 돌을 고르고 물길을 냈을 걸 상상하니까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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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시간쯤 달려 하얼빈에 도착했다. 하얼빈역에 도착하면 바로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저격한 의거장소를 바로 볼 수 있는 줄 알았다. 알고보니 우리가 도착한 하얼빈 서역은 저격 장소가 아니었다. 하얼빈 역으로 이동해야 볼 수 있는데 그마저도 기차 플랫폼 안에 있어서 기차표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밤이 늦어서 저녁만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숙소 이동하려는데 가이드 선생님이 표정이 심각해졌다. 우리 해맑음에서 전체 일정을 담당하고 계신 정세미 선생님을 어두운 표정으로 찾고 계셨다. 태풍 때문에 상해로 가는 비행편이 하나씩 취소되고 있었는데 우리가 탈 비행편도 취소된 것이다. 선생님들이 모여 긴급회의를 했다. 대련으로 가서 안중근 의사 순국지도 보고 대련에서 비행기나 배편으로 귀국하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갑작스레 여행의 향방이 바뀌었다.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생기려나.

 

<둘째 날>

여행 일정이 다시 바뀌었다. 이틀 후 상해로 가기로 했다. 하얼빈에서 이틀을 더 지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처음 여행 일정을 확인했을 때부터 가장 아쉬웠던 게 하얼빈에서 간신히 하루만 묵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태풍 덕분에 오히려 하얼빈에서 여유 있게 이틀이나 더 묵을 수 있게 된 거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던가. 완전히 나쁜 일도, 그렇다고 엄청나게 좋은 일도 없다는 걸 살면서 깨닫는다는데 아마 우리가 며칠간 걱정했던 태풍도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날씨가 비오다 흐리기를 반복했다. 우리가 하얼빈에 온 가장 큰 이유인 하얼빈 역과 그 안에 있는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찾았다. 하얼빈 역은 멀리서 봐도 중국 건축물 같지 않다. 하얼빈이라는 도시 자체가 러시아가 점령했던 기간이 있어서 도시 전체에서 러시아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나는 중학생 때 산 안중근 의사 전기 편집본을 들고 갔다. 그 책을 들고 하얼빈 역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와보고 싶었던 곳에 와서 드디어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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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역사 한켠에 안중근의사기념관이 있다. 중국에서는 외국인을 기념하는 기념관을 만드는 일이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중국 정부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아서인데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중국에서도 높게 사고 있어서 보기 드물게 기념관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안중근의사기념관에는 하얼빈에 도착해 의거를 준비하고 의거 후 체포되어 구금된 후 뤼순 감옥으로 가기까지 열하루 동안 안 의사가 한 일이 전시되어 있다.

나는 원래 박물관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평소에도 천천히 전시물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 전시만큼은 정말이지 한 자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제한된 시간이 아까울 뿐이었다.

전시를 보고 다시 나오면서 안 의사의 동상을 오래 바라보았다. 안 의사가 총을 겨누러 발을 내딛는 순간을 형상화한 동작이라 생동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표정에 서려있는 결기가 삶을 던진 한 사람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면서도 동작에서 묻어나는 생동감과 묘한 괴리를 자아냈다. 아마 내가 그 분의 삶을 그렇게 해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내게 삶을 던질만한 질문이 있는가. 기념관을 나오고 나서도 자꾸 내게 묻게 된다.

 

러시아정교의 성당인 소피아성당을 잠시 둘러보았다. 날씨가 좋았다면 더 머물면서 주위도 둘러볼 여유가 있었을텐데 날씨가 너무 아쉬울 뿐이다. 731생체실험부대전시관에도 다녀왔다. 하얼빈에 도착하자마자 가이드 선생님이 설명해주셨던 장소가 731생체실험부대전시관이다. 어릴 때 소설책 제목으로인가 처음 접하고 얼핏 관련 영화도 본 기억이 있다. 너무 잔인해서 이걸 봐도 되는건가 의심스러웠던 기억이 있는데 실제 731생체실험부대에서 일어난 일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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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전을 거듭하던 일본이 화력으로 하는 전쟁에 한계를 느끼고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 생화학무기이다. 세균을 퍼뜨려 전쟁에서 이기려는 시도를 한 것인데 그 발상부터가 잔인하기 그지없다. 731부대에서는 사람과 동물에게 갖가지 실험을 했는데 각종 세균을 몸에 주입해 그 반응을 살펴보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추운 겨울에 살아있는 사람 손에 찬물을 부어 동상을 입게 하고 녹이고 얼리기를 여러 번 반복하면서 피부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실험했다. 또, 넓은 대지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방사형 모양으로 사람을 세워두고 바로 죽지는 않도록 철모를 씌운다. 그런 뒤 가운데에서 세균폭탄을 터뜨려 그 파편이 몇 미터까지 날아가며 그 파편에 맞아 감염된 사람이 죽는 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를 실험했다. 몇 년이 흘러 일본이 전쟁에 패망하자 생체실험부대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관련 인사를 죽이고, 실험했던 도구며 개발한 세균 무기를 땅속에 묻었다. 아직도 세균 무기를 폐기한 장소를 알 수가 없고 그 때문에 아직도 하얼빈에서는 알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부대에서 실험이 성행할 때에도 관련 연구자나 그 부대에 복무하는 장교들이 밖으로 외출할 때면 부대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사복으로 갈아입는 등 철저하게 은폐하기 위해서 노력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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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폐하려고 했던 것 자체가 그 부대가 했던 행위가 얼마나 부당했는지를 방증하는 것이다. 일제가 우리나라와 아시아 나라들에 얼마나 잔혹했는지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분이 치밀어 오르는 것은 나라의 주권을 빼앗거나 경제를 수탈했기 때문도 있지만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없는 짓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이다. 한국어 설명을 들을 수 있어서 박물관 내용을 더 열심히 볼 수 있었지만 내용을 자세히 알면 알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날씨도 내내 우중충했고 안중근의사기념관과 731생체실험부대박물관을 관람하며 느꼈던 어두운 감정을 조금 맑게 해줄 반전이 생겼다. 마침 우리가 머무는 기간에 하얼빈 음악축제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얼빈 번화가인 중앙대가에 들러 음악축제 분위기도 느끼고 오랜만에 자유로운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중앙대가는 유럽식 건축물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유럽거리이다. 1920~30년대에 지은 건물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 하얼빈의 중요한 유산으로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100년이 넘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샀다. 아이스크림 맛보다도 가게 앞에 걸려있는 QR코드를 사람들이 휴대폰으로 찍어 계산하는 광경이 더 인상 깊었다. 중국에서는 위챗(웨이신이라 불리는 중국의 모바일 메신져)이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이 실감 났다. 오래된 호텔 테라스에서 연주자들이 하나씩 나와서 생음악을 연주해주었다. 음악 속에서 즐거운 저녁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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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날>

오랜만에 여유로운 아침 시간을 맞았다. 서울에 한강이 있다면 하얼빈에는 송화강이 있다. 오래된 철교를 강 밑이 다 보이게 유리로 바닥을 만들어 높은 곳이 있어 그 위를 잠깐 걸어보았다. 그리고 송화강 둔치를 거닐다가 중국 어르신들이 중국 전통악기로 연주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누군가 그곳에서 우리가 홀로 아리랑 공연을 하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냈고 양해 말씀을 구했는데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악기를 준비해 와서 동선을 짜고 준비를 마쳤다. 선호 선생님이 풍선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제로 선생님이 그 바통을 이어받아 마술 공연을 해주셨다. 그 중간에 우리가 한 명씩 들어가 공연대형을 만들고 홀로아리랑을 함께 불렀다. 지켜보던 사람들도 좋아하고 공연하는 우리도 즐거웠다. 하얼빈까지 오면서 중국 공안의 감시가 심해 마땅한 공연장소와 타이밍을 못 찾았는데 드디어 우리가 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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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공연을 잘 마쳤다는 뿌듯함을 안고 조린공원을 찾았다. 조린 공원은 안중근 의사가 의거를 계획하고 그 계획을 점검했던 장소이다. 안 의사는 돌아가시기 전에 유해를 하얼빈공원에 묻었다가 우리나라를 되찾거든 고국에 다시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그 하얼빈 공원이 지금은 조린공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조린공원 안에는 안중근 의사가 쓴 글씨 기념비인 청초당비가 남아있다. 청초당비 앞에 헌화하고 공원을 둘러보았다. 이번 여행에서는 여행지를 과거 시계로 돌려 당시 상황을 상상해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당시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도시에서 러시아어도 몰랐던 안중근 의사가 얼마나 막막했을까. 상대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지, 또 그 의거가 성공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을텐데 어떤 마음으로 계획을 했을까. 어제 보았던 안 의사의 결연한 표정이 다시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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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린공원을 둘러보다가 한적한 지점을 찾았다. 우리는 다시 공연을 했다. 송화강에서는 다른 공연을 보려고 관객이 모여있는 상태에서 공연을 시작했지만 이번엔 아예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사람들 이목을 끌어 관객을 만들었다. 나중에는 진짜 예정된 공연을 진행한 것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그곳에서 홀로아리랑을 불렀는데 관객 중에 눈물을 흘리는 아주머니도 계셨다. 눈물을 흘릴만한 사연이 있는지 홀로아리랑 자체가 슬픈 감정을 자아냈는지 알 길은 없지만 누군가에게 우리가 목소리로, 몸짓으로 감동을 줬다니 우리 마음도 덩달아 뭉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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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으로 물만두를 먹었다. 사실 처음엔 만두가 저녁거리가 될까 싶었다. 막상 식당에 도착해 만두가 상에 하나씩 올라오는 걸 보니 양이 어마어마했다. 생긴 건 거의 다 비슷한데 맛이 다 달랐다. 1층에서 열심히 만두를 빚고 있다가 그걸 바로 쪄서 내는 것이다. 신기한 것은 우리가 보기엔 거의 다 똑같이 생겼는데 가게 점원이나 가이드 선생님은 겉모양만 보고 무슨 맛인지를 알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돌아가는 길에 저녁으로 물만두를 먹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어떤 손님이 왔다가 갈 때 마지막까지 원만히 일정을 마쳐서 보낸다는 의미로 만두를 먹는 것이 전통이라고 한다. 비행편이 취소되고 태풍 때문에 걱정하며 뒤죽박죽 될 뻔 했던 하얼빈 일정을 무사히 잘 마쳐서 보낸다는 가이드 선생님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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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날>

하얼빈 하늘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룸메이트와 새벽시장 구경을 나갔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에서 걸어서 15분이면 닿는 곳이었다. 러시아거리는 이틀 전 우리가 갔던 유럽거리 중앙대가와 다르다. 오늘은 비행기를 타고 상해로 떠난다. 며칠간 시원하게 보냈던 여름날이 다시 뜨겁게 타오를 것이다. 다음번에는 좀 더 여유로운 일정으로 하얼빈을 찾을 생각이다. 다시 오면 100여년 전 하얼빈의 일상을 떠올리며 한없이 걷고 싶다. 

 

- 멘토 김윤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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